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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임표 감독의 재미있는 편집이야기] 영화 '마지막 방위'를 아십니까?

여러분은 혹시 '마지막 방위'라는 영화를 알고 계십니까?

약 20년 전인 1997년 서울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코미디 액션 영화다. 여름시즌에 선보여 개봉시기를 잘 골랐다는 소리를 들었다. 웬만한 영화라면 극장에 걸기만 해도 '대박'은 몰라도 '중박'은 친다는 방학시즌을 택한 것.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관객들의 외면으로 시쳇말로 '쫄딱 망한' 영화가 됐다.

영화평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관객도 들지않은 흥행 실패작이지만 이 영화는 필자에게 꽤 의미있는 작품이다. 첫 번째로 편집한 한국영화 즉,편집감독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 분야에 이름을 걸고 데뷔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필자가 속한 충무로의 경우는 좀 더 심한 편이다. 다시말해 편집을 비롯해 연출 촬영 조명 음향 세트 등의 분야에 막내로 들어와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운동선수가 국가대표가 되는 것 만큼 힘들다. 

그래서 데뷔 제의를 받는 순간, 이것 저것 조건을 따지기 보다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앞섰다. 어렵게 잡은 기회인 만큼 이를 십분활용해 홍보수단으로 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필자는 1981년 2월 고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충무로 영화녹음실에서 영화를 처음 접했다. 이어 1984년 이웃한 영화편집실에서 조수일을 시작했다. 방송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로 건너가는 행운을 잡았다. 1991년 5월부터 MBC에서 약 7년간 200여 편의 베스트극장과 수목 및 미니시리즈, 주말드라마 등의 편집을 했다.

당시 여의도 방송국에 거의 상주하며 정말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면서 편집을 했다. 연일 강행군으로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때로는 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또한 드라마 보다는 영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충무로 조수 시절, 친하게 알고 지내던 형이 영화 '마지막방위' 제작자가 됐고, 배우 캐스팅을 하기 위해 방송국에 왔다가 필자를 우연히 만난 것. 그런 연유로 영화편집의 기회를 잡았다.

필자는 충무로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당시 영화계에선 필름편집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를 과감히 버리고 디지털 편집을 택했다. 사재를 털어 NLE시스템(디지털편집기)인 AVID Film Composer를 구입했는데 이를 영화에 적용한 것은 필자가 처음이었다.

`마지막 방위'는 조금 황당한 스토리다. 필리핀의 지방도시에서 한국 근로자 20여명이 납치되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우리 군은 특수부대원을 파견키로 한다. 그런데 해커의 장난으로 현역이 아닌 방위병 5명이 선발됐다. 

유행철(김민종 분), 한장돌(이형철 분), 나희주(허준호 분), 유광정(고 박광정 분), 황구충(권용운 분)이 얼떨결에 필리핀에 가게 되고 그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워담는다. 지금과는 달리 해외 촬영이 힘든 시기였는데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 영화는 필리핀 현지에서 대부분 촬영됐다.
 
돌이켜 보면 우여곡절이 참 많았던 영화다. 예컨데 필리핀 로케이션 도중,제작비가 바닥을 드러냈다.현지인들의 인건비와 한국 스태프의 숙박비,촬영장비 임대료 등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이로 인해 감독과 PD가 필리핀에 인질로 잡혀 오도가도 못하는 곤역을 치러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개봉 이후에도 듣기 거북한 소문을 계속 접해야 했다.영화에 캐스팅됐던 주·조연급 배우들이 채무에 시달렸고,시들한 흥행의 여파로 인해 연기 활동도 원활하지 못했다.

충무로에선 영화제목을 탓하는 사람도 있었다.이 작품의 제목에 '마지막' 자가 들어가 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실제로 이 영화를 개봉시키고 충무로를 떠난 영화인이 더러 있었다. 영화를 만든 K씨는 개봉이후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후 몇 편의 영화 제작에 나섰지만 재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가슴 아픈 것은 영화를 연출한 K감독이다.그는 이 작품이후 더 이상 메가폰을 잡지 못하고 충무로를 떠났다.흥행의 참패가 가져온 댓가였는지 개봉 이후 필자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를 보지 못했다.

필자에게도 급기야 불행이 닥쳐왔다. 1997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대한민국이 휘청한 사건,IMF가 터지고 말았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일까. 얼마 뒤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한 것. 편집갑독 데뷔 이후 100여편에 달하는 한국영화가 필자를 거쳐 관객들과 만났다.

이렇게 볼때 `마지막 방위'는 한 알의 씨앗처럼 소중한 영화다. 35년 편집감독 생활에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됐고 동시에 많은 반성과 숱한 교훈을 얻었던 영화다. 또한 디지털시스템이기에 필름 시절엔 할 수 없는 '편집 복기'와 뼈아픈 '자기성찰'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아무튼 이 자리를 빌어 필자에게 영화 편집을 데뷔할 수 있게 기회를 주었던 '마지막 방위' 제작자와 감독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다.

포스터 사진=고임표 편집실 제공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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