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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187. 케니 배런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187. 케니 배런
  • 승인 2016.05.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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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模寫)란 작품을 모방해서 원본 그대로 베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회화에서 모사는 학습이나 연습을 위한 방법으로 많이 행해져 온 방법이지요. 몇 해 전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며 피카소 미술관을 간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피카소의 오랜 친구인 하이메 샤바르테스가 기증한 그의 작품과 초기작품들로 시작된 미술관인데요. 피카소는 13세에 바르셀로나로 이사해 초기 유년기의 미술 교육을 이곳에서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제가 여태껏 본 다른 미술관의 피카소 전시와는 달랐습니다.

피카소의 습작을 포함한 다양한 작품도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말년까지 창작했던 많은 작품을 시기별로 체험할 수 있었지요. 마치 작품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의 어린 시절 작품을 직접 보며 엄청난 양의 습작과 모사를 이토록 뛰어나게 창작했던 사람이란 것을 몸소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그 분야의 다양함과 기술이 상상을 뛰어넘었던지라 지금까지도 제게는 아주 충격적인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 어린 시절의 작품만 본다면 이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예상이 전혀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술관의 복도를 따라 시간에 걸쳐 삶을 따라 서서히 바뀌며 모습을 잡아가는 피카소 작품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모사란 위대했던 역사 속 예술가의 작품을 이후의 세대가 가장 근원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조각난 단서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물론 모사 학습에 여러 이견이 존재하지만, 저는 여전히 이 방법이 가장 직관적이고 객관적인 예술가와 작품과의 소통 방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이것을 어떤 도구로 접근하냐에 따라 자칫 표절과 모방의 오류를 범할 수 있겠지요.

음악에도 이런 모사는 중요한 학습 방법의 하나입니다. 보통 음악에서는 '트랜스크립션(transcription)'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가의 연주를 그 아티스트와 직접 마주하며 설명을 들을 수 없다면 그다음의 차선 단계와 같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 소통은 오직 본인과 모사하려는 예술가의 음악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어떠한 외부의 해석도 참견하지 않지요. 그래서 가장 직관적일 수 있습니다.

케니 배런(Kenny Barron)은 이런 즉흥연주의 모사 대상으로 제가 가장 손꼽는 음악가입니다.

1943년 필라델피아 태생의 재즈 피아니스트인 그는 수많은 앨범과 비밥시대 이후 지금까지 재즈의 전 시대를 걸쳐 활동하고 있는 재즈 음악가입니다. 빼어나도록 아름다운 연주도 연주지만 과거와 현대의 재즈 사이의 접점 시기는 어디일까란 질문에 가장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자칫 너무 고전에 집착한 나머지 겪는 고리타분한 아집과 너무 새로운 음악이 주는 모호함의 오류를 모두 벗어나도록 해주지요. 실제로 유학 시절 제가 가장 많은 트랜스크립션을 했던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1993년 작 'Other Places'의 일곱 번째 트랙인 'I Should Care'는 이 모든 것의 가장 이상적인 곡입니다.

 

 

 

김정범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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