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바라보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임장근의 울릉도 통신
독도 바라보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임장근의 울릉도 통신
민간 주도 모금 방식-"독도의 아픈 역사 재인식 계기될 것"
  • 승인 2018.10.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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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나라와 일본간에 끊임없는 갈등의 원천이 되어 왔다.

우리는 언제나 독도가 우리 땅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아 왔다. 독도가 우리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다케시마(竹島)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유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왔다. 참으로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독도 동도 모습. /한국해양수산개발원(KIOST) 제공
독도 동도 모습.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제공

17세기 후반 '안용복 장군' 같은 영웅이 단호하게 일본에 맞서 지켜내지 않았다면, 독도는 이미 그 당시에 일본에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며, 심지어는 울릉도도 일본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17세기를 살았던 실학자 이익(李瀷)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안용복'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살펴보기로는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일개 군졸로서 온갖 위협을 무릎쓰고 계책을 내어 국가를 위하여 강한 적에 대항하였다. 왜인들의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代)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땅을 회복하였다. -중략-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에게 상(賞)을 내리기는 커녕, 형(刑)을 먼저 내리고, 후에는 귀양을 보내어 그의 뜻을 꺾고 그를 무함(誣陷)하기에 바빴으니, 애석하구나."

이처럼, 안용복은 정부관리도 아니였고, 양반도 아닌, 미천한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왜인들의 울릉도 출어(出漁)에 분개하여 일본으로 가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우리나라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고, 그런 활약이 밑거름이 되어 1905년 이전까지 조선과 일본간의 분쟁을 그치게 했던 영웅이다.

독도 서도. /KIOST 제공
독도 서도. /KIOST 제공

지난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었다.

'독도의 날'은 고종 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칙령 제 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중심이 되어 추진해서 제정한 날이다. 일본의 독도침탈로부터 독도수호의지를 표명하고,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세계각국에 알리고자 정해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독도의 날'을 앞둔 지난 10월 21일 독도를 지켜온 사람들중에 제3대 독도주민이고 독도리 이장인 `김성도'씨가 별세했다. 이 분은 제1대 주민 `최종덕'씨와 함께 독도가 국제법상 암초가 아닌 자연섬이 되는데 필요한 사람이 사는 섬으로 공인받을수 있도록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또한 10월 22일에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13명의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현장시찰로 독도를 방문하여 독도수호의지를 다지고,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등 독도침탈 행위를 규탄하고 돌아갔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국회의원들의 이번 독도방문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해왔다.

이렇듯 집요하게 일본정부는 시시때때로, 해를 거듭할수록 독도 도발수위를 높여왔고, 지난 1월에는 도쿄 도심 한복판에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의 상설전시관을 설치하였다.

이처럼 어이없고 황당한 일본의 독도침탈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민간차원의 한가지 실천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독도가 보이는 곳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자는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像)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아픈 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할 현재, 함께 평화를 지향하는 미래 등의 상징을 담아 형상화한 것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 명예와 인권회복, 그리고 평화지향의 마음도 함께 담은 것이다.

어쩌면, 독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과 동일한 아픔을 오랜 역사에 결쳐 겪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임장근 단장과 대원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임장근 대장과 대원들.

우리는 조선시대부터 일본과 독도 영유권을 다투어왔다. 1905년 독도는 일본 시마네현에 강제 편입된다. 그로부터 5년 뒤에 조선은 한·일합방으로 국권을 상실한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일본의 독도에 대한 노략질과 침탈행위는 계속되었으며, 일본인의 안내로 미군이 독도를 대대적으로 폭격하는 사태마저 일어났다.

지난 역사속에서, 그리고 최근까지도 현장에서 자기의 목숨을 걸거나 인생을 바쳐 독도를 지켜온 사람들은 민초(民草)였다. 울릉도 석포에 있는 안용복 기념관 앞쪽, 맑은날이면 독도가 보이는 장소에 민간주도로 순수하게 성금을 모아서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한다면, 울릉도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이나 청소년등 방문객들이 일본의 야만적 행위를 상기하고, 영토의식을 바르게 갖도록 하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할수 있으리라 본다.

`평화의 소녀상'은 단순히 미술조각상이 아니고 우리들의 아픈 역사이고, 평화와 인권이 지켜지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울릉도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다면, 이와 더불어 독도의 아픈 역사를 재인식하고 독도의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단초를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 임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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