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빽판-빨간책-전자오락...'메이드 인 청계천:대중문화 '빽판'의 시대'
[현장]빽판-빨간책-전자오락...'메이드 인 청계천:대중문화 '빽판'의 시대'
  • 승인 2018.08.2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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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수입이 전무했던 1960년대 세운상가에 가면 라디오 DJ 이름으로 만들어진 앨범부터 정부가 방송을 금지했던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일본판 버전, 서구의 팝송까지 LP로 구할 수 있었다. 불법 복제된 일명 '빽판'이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대였다.

'플레이보이' '허슬러' 등 이른바 '빨간 책'과 복제된 '빨간 비디오', 만화도 세운상가에 가면 은밀하게 거래되곤 했다. 일본 비디오게임과 오락실용 게임 카피판도 세운상가에선 원판의 1/4 값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이처럼 1960~80년대 청계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추억의 빽판, 빨간책, 전자오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기획전 '메이드 인 청계천 :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가 서울역사박물관 분관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1층)에서 오는 11월 11일까지 열린다.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메이드 인 청계천'은 청계천박물관이 청계천에서 만들어진 유·무형의 자산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기획한 시리즈 전시다.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는 그 첫 번째 전시다. 

전시회에선 라디오 전성시대였던 1960년대에 유명 DJ들이 이름을 걸고 음악방송에서 나온 음반을 편집해 만든 '라디오방송 빽판'도 볼 수 있다. 빨간 비디오가 유통됐던 세운상가를 상징적으로 연출한 '빨간 방'에는 당시 유행했던 잡지들이 전시돼 있다. 추억의 오락실 게임인 '너구리'와 '갤러그'도 체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청계천 박물관'은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으로 2005년 개관했으나 아직 일반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마장동 청계천 변에 위치해 있으며 지상4층, 지하2층의 1728평 규모로 공간이 꽤 넓다.

이번 전시 관람을 위해 찾은 청계천박물관은 건물 정면의 긴 유리 튜브 형태의 조형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박물관에 따르면 이는 청계천의 물길을 상징한다고. 상설전시실은 복원되기 이전의 청계천의 모습부터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진행된 복원공사, 청계천 복원 이후의 도시 변화의 모습을 담고 있고, 박물관 바로 앞에 '판자촌 체험관'도 있다. 

상당히 넓고 잘 갖춰진 박물관 구성에 비해 기자가 찾았던 시간에 박물관을 찾은 시민들이 많지 않았던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침 한가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으나 더 많은 시민들의 발걸음을 모을 수 있는 다채로운 전시와 행사, 이벤트가 더 필요해 보였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청계박물관은 "한 때 세운상가 주변을 찾는다는 것은 대중문화를 찾는 것이란 의미가 있었다"며 "전시회를 통해 대중문화의 언더그라운드 청계천이 서울에서 대중과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시민들이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고자 한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빽판-해적판이란?]

'빽판'으로 불리던 불법 복제품들은 특히 LP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밀히 뒤에서 제작됐기 때문에 영어단어 '백(Back)'에서 기인했다는 설과 복제판을 흰색종이로 포장해 백(白)색 포장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해적판은 1950년대부터 만들어 졌으며 80년대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해적판'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불법으로 복제돼 판매·유통되는 음반이나 서적, 테이프, 소프트웨어 등을 말한다.
  
1960년대는 라디오의 시대였다. 라디오를 통해 흐르는 음악은 곧 유행이 됐고, 문화방송(MBC 1961), 동아방송(DBS 1963), 라디오서울(RSB 1964, 후에 동양라디오 TBC로 변경) 등 민간 상업 라디오 방송사가 잇달아 설립됐다.

1960년대는 음반의 수입이 전무 했던 시대로, 저작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외국가수 음반은 모두 '빽판'이었다. 라디오 방송사는 음악프로그램 청취율 경쟁에 돌입했고, 오락 매체로서 라디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세대 음악방송 DJ 최동욱과 이종환의 '탑툰쑈'로 시리즈 앨범까지 선보였는데, 모두 빽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미8군이나 중고음반(유통업자) 등을 통해 입수한 원판을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선곡해 제작한 편집음반들이 해적판 시장의 최대 히트 상품으로 각광받았다.  

1970년대 들어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라디오와 TV가 보급되며 한국대중음악의 번영기를 구가한다. 저렴한 가격과 심의 및 검열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적판이 성행했다. 해적판을 통해 서구의 음악을 향유한 청소년들이 음악인으로 성장해갔다.

1980년대는 카세트테이프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소규모로 제작된 해적판들이 전국적으로 범람한 시기이다. 길거리의 해적판 판매원들이 가요를 선곡하여 판매하는 길보드가 탄생하고 해적판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법적 처벌이 강화돼 해적판 생산이 위축됐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곡이었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금지곡이 됐다. 이 노래는 1966년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서 싱글로 발매됐다. 
     

이미자 '동백아가씨' 일본 싱글(왼쪽)과 '빽판' 뒷면의 모습. 청계천박물관 제공

1965년 방송 금지곡이 됐다. 표면상으로는 왜색풍이 원인이었으나 그 배경에는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불거진 국민적 저항을 차단하고자 했던 정치적 원인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선 이미자의 일본어 '동백아가씨'가 수록된 빽판 '리듬파레이드25집'도 볼 수 있다. 재킷의 뒷면에는 '이미자 히바리고도마도리 유행가집'이라는 조악한 등사지의 가사집도 붙어있다. 

[뭐 좋은 거 보여줄까? '빨강책'의 아찔한 추억]

세운상가 주변은 누군가에게는 '볼 빨간'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다. '플레이 보이' '허슬러' 등 각종 '빨간 책'과 각종 복제 비디오, 빨간 만화들이 은밀하게 거래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 치기어린 호기심에 큰 맘 먹고 구입한 비디오에서 전국노래 자랑이 엉뚱하게 튀어나와 당황했던 기억이 있는 세대라면 '빨간 방'에서 그 시절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유통되던 '빨간 책'들
당시 유통되던 '빨간 책'들

전시장 한 복판에 마련된 '빨간 방'은 당시 세운상가의 음란물 유통과 소비 과정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기획, 제작됐다는 설명이다. 음란물을 주로 취급했던 가게들은 셔터를 완전히 닫지 않는 것으로 자신들의 '상품'을 은밀히 암시했고, 그 '사인'을 아는 사람들은 신세계에 입장할 수 있었다.

전시장 내 설치된 '빨간 방'

빨간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하고, 집에 와 몰래 시청하기까지는 많은 '난관'도 있었다. 구입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낯선 아저씨의 '뭐 좋은 거 보여줄까'라는 은밀한 호객과, 집에 돌아와 부모님이 오시기전까지의 긴박한 순간을 모두 무너뜨리는 송해 아저씨의 '전국~ 노래자랑~'은 빨강 방을 관통하며 명랑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글/사진=김윤미 기자 millim@bs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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