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는 나에게 술 한잔 사주었다
울릉도는 나에게 술 한잔 사주었다
  • 승인 2018.07.0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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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세월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육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왔고, 수많은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참으로 분주하게,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복잡한 삶을 살아왔다. 언제, 어디서나, 내 옆에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미래는 알 수 없다고 했던가?

지난해 1월부터는 울릉도 북면 현포에 자리잡고 있는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에 근무하면서 집무실과 숙소를 오가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찾아오는 방문객들이나 기지 대원들과 가끔 회식을 하기도 하고 지역주민들과 교류도 하고 소통을 하는 기회도 있지만, 대부분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는 혼자 해먹고 TV도 혼자보며, 슬픈 장면이 나오면 훌쩍거리기도 하고, 나 자신이 현실적으로 혼밥족, 혼술족이 되어 지내고 있다.

울릉도 예림원에는 요즘 수국이 한창이다.
울릉도 예림원에는 요즘 수국이 한창이다.

혼자이긴 하지만 이 아름다운 `신비의 섬 울릉도'는 이곳에 사는 나에게 많은 선물을 연신 퍼주고 있다.

울릉도의 맑은 공기는 미세먼지가 거의 없어서 참으로 몸에서 느껴질 정도로  깨끗하고 신선하다. 나를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알레르기성 비염'이 사라졌으니까!

석포 정상에서 죽도를 내려다 보면서 멀리 독도를 찾아보는 가운데 들어오는 비경과, 독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일출, 현포 전망대에서 대풍감을 바라볼 때 펼쳐지는 저녁 노을의 향연, 그리고 노인 바위, 송곳 바위, 코끼리 바위의 자태, 파란 잉크빛 하늘과 에머럴드빛 바다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여름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태양과 너울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마치 보석이 쏟아져 나오고 너무나도 영롱한 보석들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시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후박나무와 마가나무 열매, 섬 벚꽃, 섬 동백 등의 자생나무와 섬 백리향이나 울릉국화 같은 수많은 자생 들꽃들을 보는 심미적 즐거움은 끝이 없을 정도다.

또한 겨울이 되면 기지 앞바다의 파도높이가 5~6m를 넘어서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많은 눈이 내려서 울릉도 주변마을을 연결하는 도로는 온전하게 다니기도 힘들지만, 눈앞에 전개되는 풍경은 온통 순백이고, 설국(雪國)이다.

눈 덮인 나리분지, 성인봉과 울창한 원시림과 불끈불끈 치솟아있는 신비속의 해안절벽, 그리고 푸르다 못해 눈이 시린 바다를 바라보면 설국의 `눈 페스티벌'이 펼쳐진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울릉도가 내게 주는 선물이고 무료(free of charge)다.

이것을 '가치의 모순(Paradox of Value)'이라고 하던가?

물론, 나는 "독도와 울릉도의 해양영토를 과학기술과 애국심으로 지킨다"는 나의 임무와 사명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고 짜여진 일정에 따라 기지대원들과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참으로 반갑고,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한 분이 지인과 함께 나를 찾아오셨다.

50여년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이셨던 '임○○' 선생님이 내 눈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평생동안 내 가슴에 막연하게 자리잡고 있던 선생님의 희미한 형상이 이제는 이곳에 방문하시어 손까지 잡았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울릉도의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울릉도.독도 기지 식구들과 함께 한 임 대장.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울릉도-독도 연구기지 식구들과 함께 한 임 대장.

울릉도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나의 심미성에 영감을 주기도 하고, 몸과 마음을 힐링(healing)하며 방문객들과 교류를 하면서 인생경험이나 지식과 지혜를 나누게 하는 색다른 기회를 주고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표현한다면, 그야말로 울릉도는 술 한잔을 제대로 사주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정호승 시인이 쓴 시에 안치환 가수가 곡을 붙인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사실 과거 어려웠던 젊은시절에 이 시를 읽었다면 공감을 많이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울릉도에 살고 있는 현재 나의 삶은 이 시의 의미와는 달리 인생이 나에게 제대로 술 한잔 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KIOST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 임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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