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혼이 손 끝에 떨어지는 순간"
황병기 "혼이 손 끝에 떨어지는 순간"
  • 승인 2018.02.0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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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음악에서 완성된다." 논어 '태백'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태아 때부터 심장의 맥박이라는 리듬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은 이 박동이 멈출 때 자연으로 돌아간다. 음악이 가장 인간적인 예술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음악과 인생은 시간의 흐름을 탄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공자의 저 지언(至言)을 생애에 걸쳐 증명한 이가 엊그제 타계한 황병기 가야금 명인이다. 그는 예술에 대한 경외심을 지닌, 확신에 찬 음악가였다. 생전에 자신의 경험과 철학을 100개의 문장에 버무린 에세이집 '논어 백가락'을 펴낸 적도 있거니와, 선생은 예술적 성취와 지적 통찰에서 두루 경지에 닿았던 이 시대의 드문 크로스오버 예술가이자 지식인이었다. 

선생과 가야금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던 곳이 부산이다. 중학생 피란 시절, 친구 손에 이끌려 가야금 소리를 처음 접하고는 그 자리에서 반했다고 한다. 부산에 있던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운 뒤로 이 악기와 한몸을 이룬 세월은 무려 65년 이상이다. 그의 가야금 산조는 장식보다는 구성미, 그러니까 가락을 조였다 푸는 긴장과 이완의 역동성에서 정평이 나 있다. "산조는 평생 타도 물리지 않아서 단 한 번의 연애 같은 것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와 같다."

연주자로서의 자세는 종교적 초월의 아우라까지 풍긴다. "몸에 힘을 빼야 한다. 대중가수 조용필도, 판소리꾼 안숙선도 그랬다. 자신의 감정부터 빼야 한다고. 그럼 힘이 손끝에 떨어진다. 그걸 '혼이 손끝에 떨어졌다'고 표현한다. 가야금이 진짜 잘될 때는 그냥 신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가 제일 좋다." 음악으로 몰아(沒我)에 이른 도통한 경지다.

정악과 민속악(산조)을 두루 섭렵한 특별한 이력은 전통을 넘어선 새로운 음악에의 의지를 실현시켰다. 국내 첫 가야금 창작곡 '숲'(1962) 이후 고풍스러움과 생의 활기가 결합한 작품집들이 잇따라 탄생했다. 창조와 파괴, 현대와 고전,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그의 음악을 음악학자들은 '모순을 명상하는 선(禪)의 경지'라고 찬탄했다. 예술사에 전례 없는 독보적 자취를 남긴 거목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기억되고 싶지 않다. 죽으면 깨끗이 사라지고 싶다." 물질과 정신, 삶과 죽음, 너와 내가 결국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아닐는지. 

김건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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