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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부끄러움
판사의 부끄러움
  • 승인 2018.01.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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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여 년 전 진나라 사법관인 이리(李離)는 사건 기록을 들춰 보다가 거짓 보고로 무고한 이에게 사형을 판결해 죽게 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는 부하에게 자신을 포박해 옥에 가둘 것을 명하고 자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왕은 실무를 담당한 부하의 잘못이니 자책하지 말라며 이리를 만류했다. 이리는 "형벌을 잘못 판결하면 자신이 형벌을 받아야 하고, 사형을 오판하면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왕께서 저를 사법관에 임명하신 것은 사람의 숨겨진 부분까지 가려내어 판결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 거짓말을 믿고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칼에 엎드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춘추전국시대 귀감이 된 공직자를 소개한 사마천의 <사기> 중 '순리열전(循吏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무(無)'를 화두로 정진한 조계종 초대 종정 효봉 스님은 일제강점기 판사를 하다가 출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양에서 판사 생활을 하던 그는 1923년 처음으로 사형 선고를 내린 뒤 몇 날 며칠을 '내가 무슨 권리로 사형 판결을 할 수 있는가'라는 번민에 휩싸였다. 법복을 팔아 가위와 엿판을 사서 3년 동안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금강산에 들어가 38세라는 늦은 나이에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됐다. 

"웃기고 앉아 있네"라는 한마디로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판사 초임 시절인 1981년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에서 그가 내린 무기징역 선고가 33년 뒤 재심에서 무죄로 번복된 데 대한 책임을 따지는 질문에 신경질적으로 대꾸한 여파다. 죄 없는 이를 18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켜 삶을 파탄 내고도 그는 당당했다. 34년을 기다리다 무죄 판결을 받은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에서 사형을 선고했던 이영범 변호사도 후안무치했다. 광주고등법원장을 지낸 그는 "재심에서 무죄 났으면 됐지"라고 무심하게 내뱉었다. 피해자는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오래였고, 자식들은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사마천은 악행을 저지른 관리를 기술한 '혹리열전(酷吏列傳)'도 썼다. 사법부에 의한 살인을 자행하고도 뉘우치기는커녕 꽃길만 걸었던 그들을 사마천이라면 '혹리열전'에서 빼놓지 않았을 테다.  

이상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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