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다키스트 아워
[송경원의 시네아트] 다키스트 아워
덩케르크에서 영국군 철수시킨 '윈스턴 처칠'
  • 승인 2018.01.1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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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을 철수시킨 다이나모 작전의 시간을 담아냈다. UPI 제공

망상병 환자, 자기 목소리에 도취된 배우, 탁월한 연설가, 주정뱅이, 당적을 2번이나 바꾼 남자. 윈스턴 처칠을 평가하는 말과 잣대는 다양하다. 그 무수한 평면의 단어들이 모여 처칠이라는 인간의 입방체를 이룬다. 하지만 역사는 디테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남아 모든 걸 환원시키는 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수상이라는 빼어난 업적 하나다. 어떤 경로를 거치건 처칠에 대한 관찰은 그 자장에서 멀리 벗어나기 힘들다. 실존인물을 극화한 영화가 어느 정도 정해진 답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는 생애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게리 올드만의 연기를 비롯해 실존 인물의 재현에 관한 한 더 보탤 말이 없을 정도로 탄탄하다. 하지만 기술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러한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흥미로운 건 다름 아닌 '다키스트 아워'라는 제목이다. 왜 제목이 처칠이 아니라 '다키스트 아워'라고 했을까. 왜 처칠의 일대기 대신 덩케르크에서 영국군을 철수시킨 다이나모 작전의 시간을 선택했을까.

탄탄한 연기 보여준 게리 올드만
생애 첫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히틀러의 맹공에 유럽 전역이 순식간에 점령당하자 영국은 패닉에 빠진다. 이에 평화적 협상을 주장하는 체임벌린(로널드 픽업) 수상이 야당의 반대로 자리에서 내려오고 처칠(게리 올드만)이 수상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처칠은 안팎의 적에 둘러 싸여 있다. 여당의 유력한 차기 수상 후보였던 할리팩스 자작(스티븐 딜레인)이나 조지 6세(벤 멘델슨)는 처칠의 과격한 성정을 불안해하며 실각시키고자 한다. 프랑스 덩케르크에 영국군 30만 명이 고립되자 처칠은 이를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을 구상하는 한편 협상파로부터 영국의 생존을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다키스트 아워'는 자연인 처칠의 깊숙한 심리를 파고드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렇다고 처칠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우상화 하는 전기영화와도 거리가 멀다. 부인 클레멘타인의 대사를 빌리자면 처칠은 "거칠고 냉소적이고 고압적이며 무례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처칠이라는 인간을 정확히 파악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수상 자리에 앉은 정치인 처칠은 이런 개인적인 흠결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만큼 빼어난 덕목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바로 가장 짙은 어둠을 버텨낸 신념이다. 자기 길을 뚝심 있게 걸어간 고집이라고 해도 좋겠다.

영화는 불확실한 정보와 불안한 미래,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영국 수상으로서 처칠이 어떤 선택을 했고 왜 그 길을 갔는지를 조망한다. 조 라이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유독 수직 부감 쇼트를 자주 활용한다. 기술적으로 유려한 편집과는 별개로 이 시점이 역사를 거울삼아 바라보고 싶은 지금 영국인들의 심경처럼 느껴졌다. 왜 하필 지금 처칠인가. 어쩌면 '다키스트 아워'는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인들의 불안이 반영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지나칠 만큼 영국의 위대함을 소리 높여 외치는 영화의 목소리는 도리어 영화 외적으로 많은 것들을 연상시킨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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