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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눈

모처럼 함박눈이 쏟아졌습니다. 10일 오전 포털사이트엔 '부산 눈' '부산 날씨'가 실시간검색어를 점령했고, SNS에선 아파트에 내린 눈, 바다에 내린 눈,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을 올리고 퍼 가느라 바빴지요.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들뜬 마음에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었더니, 목화솜 같은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부산지역 강설로 만덕 1터널, 산성로, 범어사로 입구 교통통제 중"이란 재난문자가 들어왔습니다. 그제야 슬그머니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내려서 쌓이면 나중에 어떡하지? 안 그래도 미끄러져 다친 이가 여럿 생겼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부산엔 눈이 귀해 재난문자까지 온다는 소식에 "실화냐"는 댓글도 눈꽃처럼 소복이 달렸습니다. 

귀한 풍경으로 치면 사막에 내린 눈이 더할 겁니다. 며칠 전 사하라 사막에 내린 눈은 세계적인 화제가 됐지요. 알제리 아인 세프라의 북부에 있는 사하라 사막에 적설량 40㎝나 되는 '폭설'이 내렸습니다. 붉은 모래 위를 하얗게 덮은 흰 눈의 풍경은 낯설었습니다. 스키장이 돼 버린 사막을 찾아 '눈 미끄럼틀'을 즐기는 주민도 꽤 있었다고 외신은 전했습니다. 현지 사진작가도 "밝은 주황색으로 빛나는 사구(砂丘)에 흰 눈은 특별한 사진을 찍을 완벽한 기회"라며 반색했다고 하지요. 황홀한 풍경과 달리 사막의 눈은 근심거리도 안겨줬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이라는 주장 때문이죠.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눈이 시인의 마을에도 내렸습니다.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 주는 이불이라는 윤동주의 눈이 있는가 하면, 먼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도 있습니다. 김용택은 내게 첫눈 같은 당신이라 노래했고, 김수영은 눈을 보고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고 선동했지요. 갑작스러운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가 있는가 하면, 백색의 계엄령처럼 덮쳐 온 최승호의 눈보라도 있습니다. 눈이 되지 못하고 땅바닥으로 고꾸라져 녹아 버린 맨 밑의 눈에 연민을 보내는, 너무 일찍 철이 든 초등학생 시인의 첫눈도 있었지요. 눈[目]으로 본 눈[雪]보다 마음에 내리는 눈이 제각각이기 때문이겠지요. 당신에게 내린 눈은 어땠나요?  

이상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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