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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택시 요금 올리려 하자 요릿집 주인들 반발하고…
1937년 택시 요금 올리려 하자 요릿집 주인들 반발하고…
  • 승인 2017.12.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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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택시는 언제 생겼을까. 1919년 조선 최초로 경성택시회사가 설립됐다고 하니, 부산에 택시가 생긴 것은 그 이후인 1920년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택시에 대한 신문 기록은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인다. 일출·봉래·겸상·대일·양산·경남·서부·만세·록·삼야·환영·미주와 택시 등이 1930년대 부산 택시회사 이름들이다. 1939년 당시 부산에는 29개 택시회사가 총 107대의 택시를 굴리고 있었다.
 
택시 요금은 뜨거운 현안이었다. 경남도 당국은 1932년 부산부(釜山府) 안에서 택시를 타면 무조건 1원을 받던 요금을 80전으로 인하했다. 경성·대구·평양과 형평을 맞춘 것이었다. 이 요금은 5년 만인 1937년 1원으로 인상됐다. 요금 인상 조치에 부산부 요리업조합은 반대 운동에 나섰다. 요금이 오르면 요릿집을 찾는 손님이 적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돈 많은 취객들이 기분이 나면 택시를 타고 찾는 곳이 요릿집이었던 것이다. 요릿집은 기생이나 창기가 있는 요정 같은 곳이었다.

전차와 충돌하고 사람을 치거나, 급히 몰다가 전복되는 택시 사고는 심심하면 터졌다. 부산부 영정(榮町)의 '경남택시'는 사고를 많이 내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이름을 '중앙택시'로 바꿨다. 하지만 또 사고를 쳤다. 1936년 12월 이 회사 무면허의 조수 김봉수(20)가 택시를 몰다가 초량에서 노파 1명을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를 냈다. 택시회사에서는 큰일 났다 싶어 사건을 운전수 최종표(24)의 과실치사로 조작했다. 벌금 70원이 나왔는데 택시회사는 나 몰라라 하고 이를 최종표에게 떠넘겼다. 이듬해 최종표는 혼자 덮어쓸 수 없다며 경찰에 가서 사건 내막을 전부 자백해 회사 대표 등 4명이 쇠고랑을 찼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건 속에는 안타깝고 씁쓸한 장면이 더 있다. 애초 사고를 낸 무면허 조수 김봉수가 계속 택시를 몰다가 사고를 낸 지 9일 만에 즉사한 일이 그것이다. 당시 택시는 고전적인 포드 자동차 같은 것으로 승객 5~6명이 타기 예사였는데 새벽 2시 손님 6명을 태우고 온천장으로 가다가 부산진 철도 건널목에서 화물기차에 부딪히는 대형 사고를 또 낸 것이다. 이 사고로 자신도 숨졌으나 애꿎은 손님 3명도 즉사했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일제는 택시를 비롯한 모든 자동차의 심야 운행을 중지시키고, 가솔린 소비제한제까지 실시했다. 1939년에는 부산의 29개 택시회사를 일본인이 운영하는 부산교통회사와 경남자동차회사 2곳으로 통합시켜 버렸다. 엄청난 특혜였다. 그 특혜 속에서 부산부에서 동래 온천장까지 왕복 차비를 6원이나 받는 '부정 요금 횡포'도 자행됐다. 이권을 주무르는 것만큼 식민지 통치의 쏠쏠한 맛과 재미가 있을 수 없었다. 

최학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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