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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과 외과 의술

서기 219년 관우는 조조의 군사와 싸우다 팔에 독화살을 맞았다. 뼈까지 썩어들어가 서둘러 조치하지 않으면 팔을 잃을 수 있는 상황. '명의' 화타가 관우의 팔을 절개하는 사이, 관우는 다른 팔로 태연히 바둑을 둔다. 적막 속 사그락사그락 뼈 깎는 소리, 그리고 경악에 휩싸이는 휘하 장수들…. 소설 '삼국지'의 이 장면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 없으나, 화타가 마비산(麻沸散)이라는 마취약을 발명했다는 기록이 '후한서'에 나온다. "마비산을 먹여 배와 등을 갈라 병 덩어리를 걷어낸다. 장과 위에 있으면 절제한 후 씻어내 덩어리를 제거하고 봉합한다." 
  
이에 앞서 춘추전국시대에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또 다른 '명의' 편작이 있었다. 중국 고전 '열자(列子)'에 '편작이 두 사람에게 독주를 마시게 하고 3일 동안 깨지 못하게 한 뒤 흉부를 갈라 심장을 찾아 제자리에 옮겨 놓았다'고 기술돼 있다. 
 
인류에게 상처는 숙명과 같은 것이었다. 원시시대의 수렵과 어로, 국가 간 정복전쟁 등을 거치면서 외상은 깊고 커졌다. 이미 45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무덤 유골에서 뇌와 관련된 외과 치료의 흔적이 목격된다. 기원전 1800년께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외과수술에 실패한 의사를 처벌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유럽에선 기원전 5세기께 인물인 히포크라테스의 전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은, 메스로 치료할 수 있다. 메스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인두로 가능하다." 서양은 19세기까지 총상치료법과 지혈법 발견, 해부학의 발달 등 성과에 힘입어 외과의술의 체계를 마련했다. 1846년 에테르 흡입마취법과 1867년 무균법의 확립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의학서인 '향약구급방'에 밖으로 나온 내장을 안으로 넣고 봉합하는 방법이 나온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더욱 세련되게 알려 준다. "끊긴 장의 양 끝을 빨리 바늘과 실로 꿰맨 다음 닭 볏의 피를 발라 뱃속으로 밀어넣는다." 
 
귀순 병사를 살려 낸 이국종 교수의 사례가 회자하면서 외상 치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외상치료 같은 기초의술에 대한 지원 확대는 당연한 일이다. 다만, 현대 사회가 원시시대와 다름없는 물리적 외상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우울할 뿐이다. 인간이 빚어내는 온갖 전쟁과 사고, 충돌과 싸움 등은 언제쯤 사라질까. 김건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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