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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소송
길냥이 소송
  • 승인 2017.11.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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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사냥개'를 그린 암각화가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사막에서 발견됐다. 얼추 기원전 8000~9000년에 그렸다고 한다. 활을 당기려는 사냥꾼과 그 옆을 지키는 개가 그려진 암각화에서 눈에 띄는 건 개의 목줄이다. 사냥꾼의 허리에서 시작해 개의 목까지 연결된 끈의 묘사가 선명하다. 목줄은 개를 길들인 직접적인 증거다.
 
인간의 곁을 지키는 반려동물과 만남은 그만큼 아득하게 거슬러 올라간다. 동서고금을 넘어 둘의 인연도 각별하다. 경남 사천시 늑도의 삼한 시대 유적에서도 '순장(殉葬)'으로 보이는 온전한 반려견 유골이 수습됐다. 조선 시대 학자 이덕무는 '호백(豪伯)'이란 거창한 자(字)까지 지어주며 개를 아꼈다. 프랑스의 동물 공동묘지엔 "인간에게는 실망하지만, 나의 개에게는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는 비문이 적혀 있다.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동물은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극단적으로 운명이 갈린다. '의견상(義犬像)'까지 세워져 추앙받다가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험한 말에는 으레 '개'자가 따라붙고, 개살구·개맨드라미·개나발에서 '개'란 접두사는 비루함의 상징이었다. 

억울한 대접은 개뿐만 아니다. 부산에서 길고양이를 차로 치었다가 치료비 411만 원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두고 소송이 진행 중이다. 법원은 길고양이를 '주인 없는 물건'으로 보고 보험사가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 

법정에서 쟁점이 된 건 '주인'을 따지는 소유권의 문제였지만, '물건'이란 단어가 눈에 더 밟힌다. 생명을 대하는 가치관에 혼란을 줘서다. 길고양이 600마리를 잡아 끓는 물에 산채로 넣어 죽인 뒤 건강원에 팔아넘긴 사건에서도 길고양이는 '물건' 취급을 받았다.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동물까지 챙길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들 반문한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방치해선 안 되지만, 죽어가는 동물을 모른 척할 수도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동물도 본능적으로 죽음을 싫어하고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삶을 추구한다.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헌법에 동물권을 명시하고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민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성찰은 약자의 인권과 비례한다고 믿는다.  

이상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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