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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동해남부선 개통 때 탄생한 수영해수욕장
1934년 동해남부선 개통 때 탄생한 수영해수욕장
  • 승인 2017.11.0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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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7월 16일 일요일은 33도가 넘는 무더위였다. 부산부 좌천정에 사는 수정소학교 3년 김영수(11)가 사촌들과 수영해수욕장에 갔다가 오전 11시 30분께 파도에 휩쓸려 익사했다. 시체가 떠오르지 않아 경찰 경비선까지 출동해 일대를 수색했다. 이 사건은 1934년 수영해수욕장 개장 이래, 5년 만의 첫 익사 사고였다.
    
수영해수욕장은 낯설다. 수영강 하구, 이전 수영비행장 앞쪽의 모래 해변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올림픽공원~벡스코제2전시장~부산시립미술관 쪽으로 이어진, 수영강 하구에서 우동천 하구(시립미술관역 3번 출구 부근), 혹은 그 너머(당시 해안선이던 해운대로)까지 형성돼 있던 모래 해변이었다.
            
수영해수욕장이 개장한 것은 1934년 7월 15일 동해남부선이 개통할 때였다. 옛부산역~해운대역 구간 21㎞가 완성됐을 때 수영역 인근에 동해남부선의 유일한 해수욕장으로 개장했다. 과장인지 모르나 '길이 2㎞의 처녀 해변'은 '남조선에서 제일가는 해수욕장'으로 당시 '매일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근대 교통은 공간을 창조했다. 이듬해 동해남부선이 송정까지 연장되자 송정해수욕장이 탄생한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 동해남부선은 하루 7번 왕복하면서 '해운대온천'과 '수영해수욕장'에 대한 왕복 요금 할인을 단행했다. 요컨대 해운대는 온천, 수영은 해수욕장을 내세웠던 거다.  
        
수영해수욕장이 얕은 수심으로 물놀이하기에 안전하고 좋았다는 사실은 전설처럼 남아 있다. 학생들 여름 수련회 하기에 매우 적당했으며 부산진소학교는 1000여 명이 모이는 '야유회 겸 동창회'를 수영해수욕장에서 매년 열었다.
                 
수영해수욕장의 운명은 복잡했다. 1944년 일본이 이곳에 군용 비행장(수영비행장 전신)을 만들면서 폐쇄됐다가 해방 후 재개장했다. 1948년 8월의 웃지 못할 촌극 하나. 숱한 피서객이 모인 수영해수욕장에서 대신동 이윤수(31)가 한 여성과 모래알을 만지며 정다운 얘기를 나누는데 여자 2명과 남자 1명이 나타나 갑자기 두 사람을 마구 때리고 여자의 해수욕복을 갈기갈기 찢어 보이지 못할 곳까지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고 도주했다. 알고 보니, 여자 2명은 이윤수의 아내와 첩이고, 남자는 첩의 오빠였다고. 이들은 처첩도 모자라 또 바람을 피우고 있는 현장을 덮친 것이다. 모래사장 위의 그런 해프닝이 파도에 밀려 덧없이 사라진 것처럼 수영해수욕장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한국전쟁 이후 수영비행장 자리에 군용·민간용 비행장이 들어선 뒤에도 모래 해변이 있기에 1960~70년대의 어느 때까지 해수욕하는 이들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앞서 요트경기장 조성을 위해 수영만을 매축할 때 수영해수욕장의 흔적을 간직한 그 모래 해변은 완전히 사라졌다.

논설위원 

사진 = 매축 전 옛 수영해수욕장 해변. 왼쪽 길은 오늘날 벡스코와 부산시립미술관 사이 도로다. 해운대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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