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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화의 전통
기록문화의 전통
  • 승인 2017.11.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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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년 2월 8일의 일이다. 태종이 사냥에 나섰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졌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체면이 영 그랬는지 태종은 "사관이 모르게 하라"고 일렀다. 그런데 낙마한 일은 물론이고 태종의 발언 내용이 그대로 태종실록에 실렸다. 나중에 세종은 실록의 내용이 궁금해 몇 번이나 열람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우리에겐 자랑할 만한 기록문화의 전통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엄정한 것이었다. 특히 조선은 기록문화의 진수를 보여 준다. 왕의 일기인 일성록, 왕의 비서기관의 사무를 기록한 승정원일기, 국가 최고의결기관의 활동을 담은 비변사등록, 그리고 472년에 걸친 편년체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 등등.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우리 기록문화가 거둔 성취다. 조선통신사 기록물과 함께 등재된 또 다른 2건은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이로써 우리나라는 1997년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으로 출발해 총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이번에 등재된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은 우리나라 63건 124점, 일본 48건 209점 등 한·일 양국 합쳐 총 111건 333점이다. 김의신 서첩 등 부산박물관 소장 서화 10점, 조선통신사시고 등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서화 4점을 포함해 부산지역 소장품 14점이 여기에 들어갔다. 
         
등재 목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18세기 부산(동래) 화가 변박의 그림들이다. 그는 통신사 정사 조엄의 눈에 들어 1763년 사행선에 올랐다. 공식 화원인 김유성과 더불어 에도 막부 장군들이 참관하는 자리에서 빼어난 솜씨를 뽐냈는데, 그 무렵 그린 묵매도(墨梅圖·부산박물관 소장)와 송하호도(松下虎圖·오사카역사박물관 소장), 그리고 20여 년 뒤에 그린 왜관도(倭館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목록에 올랐다. 250여 년 전의 그 이름들을 호명하는 우리의 심사는 벅차면서도 안타깝다. 변박은 역사에선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미궁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그의 행적을 좇는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이 쓴 '유마도(柳馬圖)'는 일본 시코쿠에 있는 사찰 호넨지(法然寺)에 변박의 또 다른 그림이 소장돼 있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버무린다. 역사의 틈새를 메우는 작업 역시 기록의 편린조차 없다면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건수 편집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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