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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당한 사람들', 일곱 여자와 한 남자의 동거 '소리 없는 욕망의 전쟁터'
  • 송경원 영화평론가
  • 승인 2017.09.0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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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당한 사람들'은 여자들이 사는 대저택에 부상당한 남자가 들어오면서 시작된 은밀한 관계를 담ㅇㄴ 스릴러물이다. UPI 코리아 제공

리메이크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아이디어의 고갈을 자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시대에 맞춰 겉옷만 갈아입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될 때도 있다. 올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은 돈 시겔 감독의 1971년작을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6일 선보인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같은 소재와 뼈대를 가지고도 이 정도까지 다르게 변주할 수 있다면 그건 창조나 다름없다. 아니 시야를 넓힌다는 의미에서 첫 걸음을 뛰어넘기도 한다. 물론 우열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쪽이 마음을 좀 더 이끄는지 확인할 수 있는 확장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1864년 남북전쟁이 끝나기 직전 미국 남부 버지니아의 한 기숙학교에 7명의 여인들이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함께 지낸다. 어느 날 전쟁 중 부상을 당한 북부군 존 맥버니 상병(콜린 파렐)이 근처 숲속에 숨어있다 한 소녀에게 발견된다. 원장인 마사(니콜 키드먼)는 잠시 존을 돌봐주기로 하지만 몸이 회복 되는대로 남부군에 넘기겠다고 말한다. 다급해진 존은 살아남기 위해서 여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애쓴다.

몸의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서 모두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발버둥. 소피아 코폴라가 새롭게 조명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돈 시겔 감독이 금기가 유발하는 에로틱한 공포에 방점을 찍었다면 소피아 코폴라의 손길은 매혹과 두려움의 근원을 좀 더 세심하게 더듬는다. 동전의 양면 같은 감정을 여성의 시점에서 뉘앙스로 켜켜이 쌓아간다고 해도 좋겠다.

칸영화제 공개 당시 돈 시겔의 작품과 달리 흑인 하녀 캐릭터를 삭제한 것을 두고 이견이 있었다. 노예제도나 인종문제 등을 짚은 풍성한 텍스트를 단순화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선택이 소피아 코폴라의 비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이건 폐쇄된 환경이기에 가능한 욕망과 통제에 관한 예민하고 우아한 게임이다.

기숙학교라는 세상과 단절된 무대 위에서 7명의 여인과 1명의 남성은 각기 다른 욕망을 슬며시 드러낸다. 생존을 위해 여인들의 환심을 살 필요가 있는 존은 여인들의 각기 다른 욕망을 필사적으로 탐색한다. 원장에겐 홀로 기숙학교를 꾸려온 능력을 칭찬하고 기숙학교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에겐 탈출의 희망을 심어준다.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알리시아(엘르 패닝)에겐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칭찬해준다. 적지 않은 영화가 단순히 성적인 갈망으로 치환되어온 욕망이 실은 얼마나 다양하고 섬세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불투명한 안개처럼 차오르는 욕망의 공기를 만져질 듯 생생하게 그려내는 솜씨에, 그야말로 매혹당하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다. 인형의 집이 우아하고 깔끔한 손길로 다듬어질수록 거꾸로 억압받은 여성들의 살아있는 숨결이 생생하게 실체를 얻는다. 여성에 의한 여성의 재현이란 이런 게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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