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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베스' 가부장·귀족주의 사회의 억압과 모순, 욕망으로 파괴하다
'레이디 맥베스' 가부장·귀족주의 사회의 억압과 모순, 욕망으로 파괴하다
  • 승인 2017.07.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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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는 것이 당신을 증명한다. 가정과 사회가 강요하는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속박할 때 억눌린 욕망이 파괴를 통해 분출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삶의 결정권은 때론 욕망을 통해 드러나기에 숱한 고전명작들은 욕망을 파내려간 바닥에서 인간의 본성을 마주해왔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의 '레이디 맥베스'는 19세기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당대의 억압 속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여인의 초상을 강렬하게 그려낸 이 문제적 작품은 영화, 오페라, 연극, 무용 등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재탄생해왔는데, 윌리엄 올드로이드의 손을 거치며 다시 한 번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19세기 영국, 열일곱 소녀 캐서린(플로렌스 퓨)은 늙은 지주 보리스(크리스토퍼 페어뱅크)에게 팔려와 지주의 아들 알렉산더(폴 힐튼)과 결혼한다. 알렉산더에게 자유를 억압당하는 나날이 이어지던 중 캐서린은 하녀 애나(나오미 아키에)를 겁탈하려는 하인 세바스찬(코스포 자비스)을 보고 기이한 열망에 빠진다. 결국 세바스찬과 가학적인 육체관계를 가진 캐서린은 비틀린 욕망에 눈을 뜨며 새롭게 태어나고 급기야 기존의 자신을 억눌러왔던 모든 질서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단순히 개인의 뒤틀린 욕망이 빗어낸 파국의 드라마가 아니다. 파괴를 통해 거꾸로 보이지 않던 질서의 모순을 드러내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가깝다. 가부장, 계급,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까지 사회의 억압과 모순이 한 여성의 자존을 짓누르는 상황. 누구 하나 자신의 편이 없는 그곳에서 캐서린의 선택이 규범과 질서에 반발하는 건 생존을 위한 정당한 반응, 숨 쉬기나 다름없다. 급기야 캐서린과 세바스찬의 비정상적인 탐닉은 모든 질서를 해체시킨다. 보리스와 알렉산더로 상징되는 가부장, 귀족주의의 권위가 얼마나 나약하고 생기 없는 것인지 드러나는 한편 해방을 바라는 캐서린과 질서에 순종하는 안나의 계급갈등도 표출되는 것이다. 이 모든 해체의 과정이 격렬하게 타오르는 육체의 욕망이란 비틀린 멜로드라마 위에 진득하게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 이 영화에 매혹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교하고 차가운 한편 격정적인, 모순의 드라마는 그렇게 완성된다.

무엇보다 '레이디 맥베스'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영화스럽다. 연극연출가이기도 한 윌리엄 올드로이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적인 순간들을 창조해낸다. 가령 연극을 보는 듯 고정된 카메라로 무대를 잡아나가던 카메라가 캐서린이 집밖으로 나가 해방감을 느끼는 시점에선 자유롭게 흔들린다. 상징과 메시지를 장면화 시킨 정교한 연출 덕분에 그저 인물의 감정을 따르는 걸 넘어 사건과 상황에 대한 치밀한 관찰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정점에 캐서린을 연기한 플로렌스 퓨가 있다. 맑은 얼굴의 앳된 소녀는 어느새 주체적인 여인으로 거듭나고 조용하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관객의 심장마저 장악한다. 스스로 주인이 되는 연기란 이런 것이다. 8월 3일 개봉.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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