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HOME 오피니언 동서남북
'옥자' 논쟁과 영화 생태계
  • 강소원 영화평론가
  • 승인 2017.06.15 08:58
  • 댓글 0

영화관이 학교이자 일터인 내게 그 공간이 특별한 인상은커녕 개별성도 지니지 못한 곳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때 우리는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그 영화를 어느 극장에서 보았는지도 영화의 일부분인양 말하곤 했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이상적인 영화관은 수영만 요트경기장 내에 있던 '시네마테크 부산'이다. 시설 면에서 시네마테크 부산은 훌륭한 영화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관인데다 스크린은 작고 사운드 시스템도 형편없고 의자는 멀쩡하던 허리조차 디스크 증상을 불러올 정도로 불편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멀티플렉스에는 없는, 영화를 산업이 아니라 예술로서 대하는 문화적 향취가 배어 있었다.

이제 모든 영화관은 기본적으로 똑같다. 이 또한 오래된 일이다. 문화적 향취는커녕 영화를 선택할 권리조차 사라진 멀티플렉스 시대에 관객은 차라리 소비자라 불리는 게 옳다. 잘되는 영화만 몰아서 틀어대는 스크린 독과점은 말할 것도 없고, 요일·시간·좌석별 차등요금제로 슬그머니 관람료를 인상하고, 입장료보다 더 큰 수익을 팝콘 장사와 10분의 광고 상영으로 거둬들이고, 화면비에 맞춰 검은 커튼으로 마스킹하는 것도 간단히 무시한 채 상영에 들어가서는 앤딩 타이틀이 올라가기 무섭게 조명을 밝혀 관객들을 쫓아내는, 이 파렴치한 장사치들의 좌판 위에 펼쳐진 영화라니.

지난해엔 이런 일도 있었다. 영화를 인터넷 예매한 몇 시간 뒤, 멀티플렉스 직원이 전화해서는 상영이 취소되었으니 예매 분을 취소해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해왔다. 미심쩍었지만 안 된다고 버티기 뭐해서 예매를 취소했다. 알고 보니 나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애초의 상영시간표와 달리, 흥행몰이하는 영화에 스크린을 내주기 위해 잘 안 되는 영화의 소수 관객을 내쫓은 것이다. '수익의 극대화'. 대기업이 주도하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이것을 위해서는 어떤 편법도 불사한다.

그런 그들이 '영화 배급 생태계의 질서와 균형' 운운하고 있다. 지금 한창 이슈인 봉준호 감독의 '옥자' 개봉을 둘러싼 얘기다. 미국 스트리밍업체인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영화는 온라인 배급과 동시에 극장 개봉을 예정했지만, 한국의 거대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국내 영화 생태계의 교란'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중이다. 확실히 하자면, 한국영화의 생태계 균형을 깨트린 것은 그들이다. 그들은 단지 또 다른 경쟁자를 맞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사실 '옥자' 논쟁은 칸국제영화제에서 시작되었다.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좀 구태의연해 보였다. 21세기의 다변화된 매체 환경에서 영화를 전통적인 범주로 제한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해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TV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일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고, 극장용으로 만들었지만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흥미롭게도, 올해 칸은 넷플릭스 영화뿐 아니라 알레한드로 이냐리투의 VR(가상현실) 단편과 데이비드 린치와 제인 캠피언의 TV시리즈물도 초청하였다.

'옥자' 논쟁에는 기묘한 구석이 있다. 논쟁이 가열될수록 결론 따위엔 무심해지는 것이다. '옥자'가 3대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느냐 마느냐는 이제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나머지 8%의 극장에서 보면 되니까. 평소에도 '작은 영화'를 보려면 그런 수고를 해야 했다. 다른 맥락에서, 나는 '옥자' 논쟁이 더 확산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전체 스크린의 92%를 독점하고 있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한 영화 생태계의 질서란 무엇인지 모두 알게 되었으면 한다. 이틀 전 임명된 신임 공정거래법위원장이 우선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부분도 여기다.
 

 

 

강소원

영화평론가

icon지금, 이 뉴스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많이 본 뉴스
주간 베스트 클릭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오피니언
PREV NEXT
여백
生生한 현장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