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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 문재인

어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올해도 전국에서 몰려와 눈물짓는 추도객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참석했다. 참여정부를 계승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배출된 두 대통령답다. 행사를 보며 이런 질문을 품게 되었다. 전·현 대통령 중 누가 더 국민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까.

국민은 지도자의 권력의지에 민감해서 권력의지가 떨어지는 경우 기억에서 지우게 된다. 권력의지만 두고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감당할 정치인이 없어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의지의 화신이라 불릴 만하다. 시국사건 변론을 맡으며 단련한 야성 하나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정치를 시작한 것도 주변 386세대들의 설득에 의해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력의지를 짐작하게 하는 개인적인 체험이 떠오른다.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기자생활 2년 차였던 1991년이었다. 1988년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이 되고 5공 비리조사 특별위원 활동으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불렸다. 모 건설사 사기분양사건을 취재하다 자료 부실을 이유로 노무현 전 의원에게 항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엔 국회의원이 민원 창구였다. 청문회 스타에게 제압당하지 않으려고 "88년도 총선에서 시민·학생이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으로 노 변호사를 국회에 보냈더니…"라며 면전에서 비난을 했다.

그때까지 짜증이 가득한 그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자신을 위해 뛰어 주었다는 부분이 그의 태도를 180도 바꿔 놓았다. "우리 앞으로 큰일을 합시다, 언론인 동지."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불쑥 꺼내 당황케 했다. 신참 기자에게 초선 의원, 그것도 중도사퇴한 의원이 '큰일'을 하자는 건 그만큼 권력의지가 내면에서 끓어 오른다는 말이다.

2009년 3월이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기 두 달 전이었다. 경남 양산시 매곡리에 있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찾아갔다. '참여정부 그 후 1년' 이라는 주제로 김해 봉하마을에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터뷰하려 했으나 칩거하던 노 전 대통령이 거부하는 바람에 문 전 실장으로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를 만나러 매곡리 개천을 따라 올라가며 동료기자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대권에 도전할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들을 때까지 일어서지 말자."

두 시간 동안 묻고 또 물었다. 은근히 묻고 막판에는 직설적으로 물어도 문 전 실장은 어떤 힌트도 주지 않았다. 그날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고 좌절한 이상주의자라 여기는 것 같은데 정책에 대해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나중엔 앞날을 내다본 성공한 이상주의자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매곡리를 빠져나오면서 동료기자와 의견일치를 보았다. "답답해서 원, 대통령은 못 되겠다. 그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중 누가 더 국민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까 하는 질문에 답이 나온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력 의지는 조선시대 정도전에 자주 비교되곤 한다. 정도전은 민본사상을 토대로 평생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쟁취에 힘을 쏟았지만 거대한 기득권에 부딪혔다. 노 전 대통령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노 대통령의 개혁은 뜻밖에도 국민들을 설득, 소통하는 데 실패하면서 좌초하고 말았지만 강력한 권력의지는 기억을 지배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오류일 수 있다. 공식 업무가 시작된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런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패권주의, 권력의지 부족,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공격받던 문재인 대통령이었으니 말이다. 문 대통령은 공식업무 시작과 함께 여러 가지 우려를 씻어 버렸다.

그래서 다시 이런 의심이 든다. 문 대통령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의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숨기고 때를 기다렸던 것은 아닌가. 그러하지 않고서야 이토록 많은 일을 한꺼번에 밀고 나갈 생각을 어떻게 했겠는가. "나는 말을 지키려는 강박관념이 있다"며 오히려 개헌을 요구하는 쪽을 놀라게 하는 배포가 어떻게 나왔겠는가.

 

 

 

 

 

 

 

 

이상민 논설위원 ye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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