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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故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아시아 영화의 세계적 통로다. 그 역할은 세계에서 독보적이다. 그 공을 한 사람에게 돌린다면 단연 김지석 BIFF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일 것이다. 그는 아시아 영화의 발견자였다. 그가 지난 18일 오후 프랑스 칸에서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별세했다. BIFF를 위해 많은 일을 더 해야 하는 향년 57세였다.

그는 아시아 영화를 발굴하기 위해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다. 5월 중순 말레이시아로 날아가 BIFF 뉴커런츠상을 받은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제를 응원했다. 4월에는 이란 파지르영화제에 갔다. 한국 영화 특강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BIFF를 아낌없이 사랑한 이란의 세계적 거장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묘소를 참배하고 싶었단다. 지난해 7월 키아로스타미가 타계했을 때 'BIFF 사태' 때문에 장례식에 못 갔기 때문이다.

그는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일 중독자였으며 미식가였다. 해외로 다니면서 영화인들과 만나는 접대성 자리에서 늘 먹는 것이 고기 종류일 수밖에 없었다. BIFF 기간 중에도 이 감독 저 영화인을 만나느라 그는 점심이나 저녁을 2~3번씩 먹었다. 고인의 막역한 친구인 오석근 감독은 "술 담배를 많이 하는 친구들을 걱정했던 그가…"라며 "지석이는 지금도 끝까지 영화를 찍고 있는 거다.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슬퍼했다.

그의 삶은 BIFF 자체였다. 결혼 자금 500만 원을 BIFF 출범 때 보탰으며, 영화제를 시작하던 해에 결혼했으며, 영화제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교수직을 그만뒀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영화제를 위해 일하고 싶어 한다니 그는 '성공한 아버지'였다. 그는 영화제밖에 몰랐다. 막역한 친구 사이에 나눈 대화의 90%가 영화제 관련이고, 10%가 자식 얘기였다고. 'BIFF 사태'가 한창이던 중 기자가 칼럼을 썼을 때 그는 "읽고 또 읽으면서 울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는 BIFF 사태의 와중에서 가장 외로웠을 거라고 한다. 공무원을 만나 BIFF 역사를 담은 자신의 책을 떨리는 두 손으로 건네면서 "한 번만 읽어 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요즘 그는 "이제 희망이 보인다"고 했단다. 영화제를 삶으로 살았던 헌신과, 좋은 영화를 골라낸 탁월한 식견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것이다.

최학림 논설위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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