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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정한다' 피로감 때문에 사회의 상처를 외면하진 않았나
'나는 부정한다' 피로감 때문에 사회의 상처를 외면하진 않았나
  • 승인 2017.04.2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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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됐다', '이젠 잊을 때도 됐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귀를 씻고 싶어진다. 그것은 가해자나 방관자들에게 허락된 언어가 아니다. 오직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을 때라야 의미가 있는 말이다. 잊고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고 인정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여기엔 어떠한 생략도 잊을 수 없다. 용서, 화합, 미래 같은 긍정적인 단어 뒤에 숨어 과오를 희석시키려는 자들을 볼 때마다 불순한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믹 잭슨 감독의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이들과 진실을 묻으려는 이들을 부정하는 역사학자의 실제 법정공방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바이스)와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데이비드 어빙(티모시 스폴)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32차례의 공판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존재 여부를 놓고 다퉜다. 다툼의 여지가 있는 건지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어빙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데보라가 왜곡된 자료와 책을 통해 자신을 명예훼손했다고 주장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영국법정을 이용해 데보라가 홀로코스트가 존재했음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데이비드 어빙의 전략은 실제 역사라는 방패 뒤에 숨어 과거를 묻으려는 이들이 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지나간 일의 증명이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서로 다른 견해와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증거가 사라지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대신 피해자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상황을 무마하려 한다.

프레임의 힘은 무섭다. 이런 프레임이 설정되는 순간부터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변모한다. 응당 추모와 애도를 받아야 할 이들이 증명의 대상이 되는 일 자체가 고통이다. 그 과정은 때론 너무도 고통스럽고 비인도적이라 우리는 종종 이를 외면하거나 흘려보내고 싶어 한다. '나는 부정한다'가 진실로 부정하고자 하는 건 데이비드 어빙 같은 비상식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상처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싶은 대중의 무게와 피로감이야말로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했지만 우리에게 여러모로 기시감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6일 선보인 '나는 부정한다'는 타산지석의 영화다. 피로감이라는 변명을 앞세워 사회의 과오와 상처를 매장하자고 주장하는 최근 우리 사회의 비틀린 시선으로부터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물론 영화가 이를 재현하는 방식에 적극 찬성하긴 어렵다. 다소 자극적이고 필요 없는 장면들도 꽤 많다. 하지만 데보라 립스타트의 결연한 태도와 힘 있는 말들은 지친 우리에게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할 순 있지만 거짓을 말하고도 책임을 피할 순 없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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